[홋카이도 여행기3-2]
23.02.02~02.03 - 굿찬조(쿠찬)
전체 여행 기간 23.01.31 ~ 02.08
식당에는 꽤 많은 손님들이 있었고, 중화권 여행객 2테이블을 제외하곤 전부 현지인들이었다. 1인용 좌석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버터콘 라멘’이 있었다. 한국에서 최근 짱구라멘이라며 출시된 적이 있어 신기해서 만두와 생맥주와 함께 주문했다. 직원이 뭔가를 말했지만 무슨 뜻인지 몰라 잠깐 기다려달라 했다. 뭔가 고르라는 듯한 의미인 것 같아 메뉴판을 다시 펼치고 파파고를 켰다. 이미지 검색을 하니 메뉴 좌측상단에 미소/간장/소금이 적힌 것을 보고 국물 베이스를 고르란 뜻인줄 알았다. 쯔유(간장)과 시오(소금)베이스의 라멘은 아직 나에겐 좀 낯설어서 무난하게 미소 베이스로 재주문했다.
맥주와 만두는 익히 아는 맛이었고, 드디어 버터콘 라멘. 라멘 위에 옥수수와 작은 버터 조각이 올라가 있는 그 모습이 꽤나 톡특하다. 국물부터 한 모금 먹어보니 아주 짠 된장 국물 맛. 버터를 녹여보니 조금은 중화가 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짠기를 씻어내기엔 충분치 않았다. 중화시키려고 버터가 있는 건가 싶었지만, 전체적으로 이상한 맛은 전혀 없었다. 단지 내 입엔 너무나도 짰을 뿐, 면과 건더기만 맥주 덕분에 겨우 먹었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그날 찍은 사진을 간단하게 보정하고, 구글 맵을 켜 내일 일정을 생각해봤다. 이 아무것도 없는 굿찬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요테이 산이 보고 싶었다. 후지산만큼 유명한 산은 아니지만 그와 똑닮은 모습을 먼 곳에서라도 꼭 보고 싶었다. 처음엔 등반까지 생각을 했지만, 조식시간을 맞추려니 입구까지 가는데만 도보 왕복 5시간이 걸렸고. 이를 맞추려면 새벽 4시쯤에는 출발해야 했기에 오랜 고민 끝에 포기하고 잠들었다.
다음 날 하루 일정을 떠올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동네 구경을 잠깐하면서 요테이 산을 멀찍이서 잠깐 보고, 오타루로 넘어가는 일정. 이곳에 있는 동안 정이 들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침대에서 일어나기 조금 힘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했고,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식은 입장 확인을 별도로 하지 않았고, 메뉴들은 딤섬, 연어, 소세지, 빵 종류들, 국과 밥, 스프 등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 아침을 챙겨먹는 편이 아니라 손이 잘 가지는 않았지만 끼니는 떼워야 했기에 이것저것 접시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결국 입맛이 없어 깨작거리다 접시 위의 음식의 1/3 정도만 겨우 비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 캡슐호텔 경험은 상당히 괜찮았다는 인상을 뒤로하고, 체크아웃을 하고 동네를 둘러보기 전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집어넣었다. 눈 쌓인 길 위에서의 캐리어는 며칠 동안 지겹도록 겪었다. 홋카이도에 온 뒤로 맑은 날씨를 본 적이 별로 없기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꾸리꾸리한 날씨. 오타루행 열차를 타기까진 4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40분 정도 걸었을까. 날씨가 맑게 개어 하늘이 파랗게 눈부셨다. 때마침 왼쪽편에 방학을 맞아 텅빈 초등학교가 있어, 들어가도 될지 잠깐을 고민하다 일본의 학교가 궁금해 들어갔다.
호텔 : TORIFITO HOTEL & POD NISEKO
건물 내부는 물론 들어갈 생각조차 안하고, 우측 편을 보니 운동장인듯 했는데 쌓인 눈이 어마무시했다. 원래도 엄청 높이 쌓여있었는데, 제설을 하고 쌓아놓은 눈 때문에 운동장이 아닌 언덕이 되어 있었다. 난 이런 건 또 쉽게 못 넘어간다. 파우더 스노우가 깔려서 허리 높이까지 발이 푹푹 빠지는 언덕 위에 올라가길 잘했다. 운동장 가득 눈이 쌓여있고, 그 너머로 주택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깔끔한 눈부시게 빛나는 눈 밭. 그렇게 행복감에 젖어 신나게 웃는 사이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마치 이상한 놈이라는 듯 쳐다봤지만, 아무렴 어때. 이게 내가 여행에서 행복을 찾는 방식인 걸.
그렇게 사진을 찍던 중 저 멀리 요테이 산이 보였다. 날이 화창하게 풀려 꽤 높은 곳까지 보였기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었다. 마침 근처에 하천 공원이 있기에 그쪽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건설용 중장비,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눈을 치우는 모습이 이들에게는 일상일지는 몰라도, 이방인인 나에게는 참 예뻐보였다. 그 순간들이 참 특별한 순간처럼 느껴졌다.